예전에 자원봉사 같은 것은 시간을 내기 쉽지않아 시작하지 못했었다. 장기 멘토링 자원봉사를 알게 되었는데, 멘티 아이와 1대 1로 서로 시간을 맞춰서 만나면 되는 자원봉사다. 어린시절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아버지의 빈자리를 느끼며 자랐다. 멘토링 자원봉사는 한부모가정이나 조손가정의 아이를 만난다. 내가 어릴 때 아버지가 없어서 해보지 못한 경험들을 멘티와 함께 많이 해보고 싶었다.
나에게는 열등감 같은 것이 있다. 그래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쉽지는 않다. 내가 만나는 멘티는 그런게 없이 자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스피노자가 비루함을 “슬픔 때문에 자기에 대해 정당한 것 이하로 느끼는 감정”이라고 정의한 것도 다 이유가 있다. 비루함에 대한 스피노자의 정의처럼 우리의 유년 시절의 경험 중에 자신에 대한 비난이나 좌절, 슬픔 때문에 자기 스스로에 대해 정당한 것 이하로 느끼는 감정이 생기면 습관화되고 고착화되어버린다. 안타까운 것은 자신을 비하하는 감정 때문에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도 어렵게 하고, 삶 전체를 망가트린다는 것이다.
<감정수업>이라는 책에 이런 말이 나온다. '그렇지만 지속적인 애정과 칭찬이 있다면, 비루함도 조금씩 사라질 수는 있다. 자신을 쉽게 비하하는 경향이 있는 사람에게 오랜 시절 만들어진 습관화된 슬픔을 그만큼 시간을 들여서 치유해 줄 수 있는 사람, 즉 봄 햇살이 겨우내 쌓였던 눈을 녹이는 것처럼 그렇게 비루함이라는 고질적인 슬픔을 천천히 치유해 줄 사람이 필요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사랑만이 비루함에서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법이니까.'
멘토가 되기 위해서는 2주(토요일 2회)의 교육을 받고 독후감 과제를 제출해야 한다. 책의 정확한 제목은 '나를 행복하게 하는 친밀함'이다. 아래 내용은 제출했던 과제의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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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덕적 자학자'에 가까운 것 같다. 지나치게 양심적이어서 자존감이 낮고, 자신감이 없으며, 모든 면에서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껴 무능한 자신을 자책하는 사람 말이다. 사람을 만나면 자신도 모르게 '이 사람도 나를 무시할 거야'라고 예상하고 상대방과 안전거리를 둔다. 가까워지면 아픈 경험을 한다고 예상해서 누군가가 접근해 오거나 친해지면 불안해진다. 사무적인 거리나 멀리 떨어져서 인사나 하는 정도의 거리가 안전거리이다. 따라서 친밀함이 주는 행복은 먼 나라의 이야기다.
친밀한 관계를 갖기 위해 먼저 할 일이 있다. 힘없는 나를 용서하고, 나를 있는 그대로 좋아해 보는 것이다. 성경에도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고 했는데,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친밀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하고,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줘야 한다. 그리고 가장 힘든 것, 대인관계의 아픔을 피하지 마라! 아프지 않고는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없으니 사람을 만날 때는 아플 각오를 해야 한다.
책에서는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좀 더 적극적이고 공격적으로 사는 것이 좋다고 한다. 숨고 도망 다녀서는 자기 가치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찾아 나서는 사람'이 돼야 한다. 자기 가치감을 높여줄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서는 것이 좋은데, 예를 들면 열등감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들을 돕는 일 말이다. 열등감으로 아파본 사람이 또한 그런 사람을 도울 수 있다고 한다.
아직도 두렵고 떨린다. 하지만 지금 한 걸음 내디디려 한다.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를 되새겨본다. 요즘 그런 고민을 하며 살았다. 자신이 아무 의미 없는 인생인 것 같다는.
시인의 고백처럼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그런 소망이 생겼다. 시인의 마지막 시구의 소망처럼 '우리들은 모두 / 무엇이 되고 싶다. /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내가 누군가에게 무엇인가 의미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 그저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된다는 그것 하나만 있어도 사람은 살아갈 수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멘토 교육도 받게 된 것이다.
시인은 그러기 위해서는 이름을 불러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이름. 이름을 불러주기 위해서는 그를 알아야 한다. 그의 빛깔을 봐야 하고, 향기도 맡아봐야 한다. 그러고 나서 그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이름'을 불러주어야 한다. 그러면,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던, 시인의 표현에 의하면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던 사람이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