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경주로 향하며 보던 기차 밖 풍경은 초록빛으로 물들은 여름날의 풍경이었다. 이른 새벽 졸린 눈을 감싸고 일어나 밀린 잠이나 자고 싶었던 마음이었는데 여행이란 독특한 일정에 홀린 듯 창 밖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일상에서 보던 지하철역조차 여행을 갈 때는 왜이리 아름답게 보이는지 눈에 여행이라는 필터가 끼워진 걸까. 나 홀로 떠나는 여행은 말할 이 하나 없어서 외로워 보인다는 우려를 많이 받지만 흔히 보는 풍경도 예뻐 보이는 필터까지 껴질 정도로 행복한 여정이다. 날이 좋으면 좋아서 기쁘고 좋지 않으면 햇볕 걱정 없이 다녀서 행복하고 비 오면 빗소리를 들으며 걸어서 행복한 순간을 한 가득 느끼고 있다.
처음 간 관광지는 경주오릉이다. 낮 햇살의 따스함과 잔디들이 주는 푸르고 청량한 잔디밭이 햇살에 부딪혀 영롱한 빛깔을 자아낸다. 사람도 없이 혼자 삼각대를 들고 이리저리 찰칵거리며 내 모습도 담고 풍경도 찍으며 시간을 보낸다. 대정릉과 달리 이곳은 사람이 없는 나만의 경주 명소다. 운치 하나는 대정릉보다 뛰어나다고 자부하니 경주의 멋과 자연을 가득 느끼고 싶은 이에게 강력 추천한다. 이곳 벤치에 앉아있으면 눈 앞에는 꽤나 높은 왕릉들이 보이고 귓가에는 나무 위 물까치들이 째짹거리는 소리가 가득하다. 하염없이 보고 또 보면서 다시는 오지 않는 순간을 눈에 담다보면 한 두 시간은 후딱 지나간다.
하지만 관광의 묘미는 모두가 가는 곳들을 눈에 담는 것이기도 하다. 경주의 필수 관광 코스인 월정교와 첨성대를 향해 걸어가는 길 보이는 풍경도 눈에 담고 연못에 핀 연꽃들도 구경한다. 연꽃은 더러운 물에서 피는 꽃이어서 안 좋아한다는 사람도 있다는데 난 그런 점이 연꽃의 매력이라 생각한다. 우리들의 인생과 제법 비슷하지 않나.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인 삶이나 가까이서 보면 구정물이 보이는 연꽃이나 비슷하다. 하지만 연꽃의 색감은 우아하고 고운 걸. 우리들의 삶도 각자 고유한 멋이 있듯이 말이다.
월정교와 첨성대에서 삼각대를 들고 타이머를 재며 혼자 독사진을 열심히 남기는 모습을 한 할아버지께서 뿌듯하게 바라보셨다. "젊은이가 열심이여. 멋있어." 라고 엄지를 치켜올려주셔서 허리를 꾸벅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홀로 다니다보면 이런 일이 종종 찾아온다. 얼굴 하나 뵌 적 없는 낯선 이의 칭찬을 듣다보면 뿌듯하기도 하고 칭찬에 몸이 베베 꼬인다. 그저 여행을 즐기는 한 사람일 뿐이지만, 그 순간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 기꺼이 홀로 나서는 모습을 다들 높게 평가해주시는 듯 하다. 그런 시선 하나하나가 따스하고 아직 세상은 살 만하다는 감정을 자아내기도 한다.
여행을 마치고 기차에 타면 피로와 즐거움이 속을 한가득 채운다. 이 맛에 여행 하지! 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여운이 남는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온전히 느끼고 맛보고 감탄하는 시간들이 뭉친 순간은 언제나 최고다. 그래서 난 여행을 사랑하고 또 사랑하나보다. 이 과정에서 주는 행복을 꽉 안아 내 안에 차곡차곡 모으고 싶으니까. 이 순간이 모여 행복한 '나'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