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키워주신 할아버지는 더 이상 뵐 수 없다.
치매 증상이 심해지셔 약도 거르고 헛 것을 자꾸만 보셔서
애걸복걸하며 약 좀 제대로 드시라고 외쳤지만
돌아오는 건 허공을 바라보는 할아버지 뿐이었다.
할머니 그만 괴롭히라는 말씀에도 그저 허공만 멍하니 바라보는 할아버지를 뵈며
더이상 나를 따스히 안아주시던 그 분이 영원히 멀어졌다는 생각에
며칠간 뜬 잠을 자며 곰곰히 어린 시절을 생각해낸다.
분명 나랑 약속하셨던 거 같은데. 나 시집 가는 건 꼭 보고 가시겠다 하셨으면서 자꾸 혼자 밖으로 나가시려 한다.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고 싶은 지도 모른 채 자꾸만 자꾸만.
거기 들어가시면 나 시집 가는 거 못 보시는데 무력하게 그 상황만 바라보면서 그저 어린 날의 꿈같은 약속이었는지만 생각하며
이제는 마주할 수 조차 없는 얼굴을 한없이 그려보고 또 그려본다.
다시 마주하면 예뻐하던 손녀 손 꼭 붙잡고 함께 행진하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