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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에 이름을 붙이면 친구가 된다
작성자
김*아
등록일
2024.06.30
조회수
946

'저도 제 마음을 잘 모르겠어요' 라는 답변에 상담 선생님은 '그럼 감정에 이름을 한번 붙여 보세요'라고 말하셨다.

'유치원생도 아니고 이름을 붙이라니....'

곰곰히 생각해보다가 '그 사람은 저한테 왜 그렇게 말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열받아요'라고 답변하자

선생님은 '그 말을 들었을 떄 속상하기도 하고 화도 나고 그랬나요?'라고 물어보셨다.

'네, 그랬던 것 같아요. 너무 속상하고 슬프고 그랬던 것 같아요.'

 선생님이 감정에 이름을 붙여주자 뭔가 불분명하던 것이 선명해진 기분이었다.

 

나는 왜 내 감정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표현하는게 어려울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사실 나는 너무 슬펐던 건데 그걸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몰라

그냥 짜증난다, 열받는다 라는 말로 퉁쳤던 것 같다. 세상아래 같은 핑크색이 없고 연분홍색, 진달래색, 복숭아색 등등 다양한 이름이 있는 것처럼

감정에도 서러움, 울화통, 억울함, 울컥함, 두려움 등등 슬픔을 표현하는 다양한 감정의 이름이 있는데 말이다.

 

심리 상담 선생님과 상담 후 나는 감정을 마주하는 일에 조금 편안해졌다. 지금 이 기분은 뭘까, 어떤 감정일까 이름을 붙여보며

나의 감정 상태를 스스로 파악할 수 있었다. 지금 느껴지는 감정을 통제할 수 없어 혼란스러웠던 과거와 다르게 내가 내 감정의 주인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선생님의 가르침 덕분에 조금 더 편안하고 안정된 마음으로 회사를 다닐 수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한 박람회에서 부천문화재단에서 발간한 '감정사전'이라는 책을 만나게 되었다.

'세상에 백과사전도 아니고 사람의 감정을 표현한 사전이라니' 너무나 새롭고 신기한 발상이었다.

내가 본 것은 <어린이 감정사전>이었는데 초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감정과 관련된 짧은 글을 묶은 책이었다.

기쁘다, 행복하다, 슬프다, 속상하다

다양한 감정의 이름을 적으며 재잘거린 이야기가 너무 귀엽고 웃음이 나왔다.

어른인 나는 선생님이 가르쳐줘서 알게 되었는데 이 어린아이들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기의 마음을 설명할 수 있구나 새삼 신기했다. 

 

어느 날부터인지 나는 내 감정표현을 하고 살지 않았던 것 같다. 기억나기로는 학업 스트레스가 시작되었던 중학생 때부터였던 것 같다.

선생님의 잔소리와 비난, 질타를 받으며 밤늦게까지 학원에서 영어단어를 외웠던 기억이 난다.

그 뒤로 나는 점점 말이 없어졌고, 기분을 표현하는 법도 잊어버리게 되었다.

 

스스로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려는 노력이 없어지자 삶이 공허하고 시시해졌다.

반복되는 출근길, 매주 쓰지만 항상 비슷한 주간보고내용, 차 막히는 퇴근길 풍경, 티비 보며 매일 먹는 저녁밥. 매달 25일 통장에 똑같이 찍히는 월급.

바뀌는 것이라고는 나이밖에 없었다.

 

그런 내 삶에 등장한 감정사전은 어린 시절의 다채로웠던 기분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지금은 바람에 흔들리는 꽃을 봐도 아무런 감정의 동요가 없는 회사원이 되었지만

우리는 어린 시절 내 곁의 친구들, 가족들과 함께 다양한 감정을 느끼며 자랐다.

어른으로 성장하며 돌보지 못한 감정들이 어느새 문을 닫고 잠식했을지언정 우리 안에 채워졌던 것들은 여전히 살아있었다.

직장인 4년차 지금 내 감정을 설명하라면 '열받는다, 짜증난다, 재미없다, 피곤하다. 출근하기 싫다, 전화하기 싫다, 빨리 주말 되면 좋겠다' 등등이지만

'신기하다, 재밌다, 설렌다, 눈물이 나온다' 등등 아이들의 기분을 읽으며

'맞아, 나도 그런 마음을 느꼈었지, 그런 기분이 든적이 있지' 잊고살았던 어린시절 기분이 그리워졌다.

각자의 감정을 기록한 감정사전이지만 사실 모두의 마음 안에 채워진 것들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고 헤아려볼 수 있나보다.

자신의 감정에 이름을 붙여주고, 때론 이런 마음이었겠구나 하고 모르는 이에게 알려주며

마음을 보듬어주는 말을 건네는 것이 서로에게 다정해지는 방법 아닐까.

 

이런 것들을 알려주는 감정사전, 참 재밌고 신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