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이 나라 전체의 화두가 되었다. 20년 이상된 아파트 승강기를 대상으로 일제 안전점검이 이뤄졌다. 우리 아파트는 교체명령이 내려졌다. 아파트 건축이 30년이 다 돼 가니 교체가 마땅하다. 허구한날, 고장이 일쑤였기 때문이다. 사람이나 기계나 시간이 지나면서 고장이 나기 마련. 관리측의 행정업무가 차일피일 미뤄지는 바람에 18개 동의 승강기가 전면 스톱된 채 교체작업에 들어갔다. 10층 이상되는 우리집을 하루에 최소 두 번은 오르락내리락 해야 한다. 한 번은 출퇴근, 한번은 강아지 산책으로. 어쩌다 휴대폰을 놓고 내려갔을 때는 다시 올라와야하는 아찔함도 있었다.
12층인 나는 10층 아래만 살아도 수월할 것 같았으나 5층 이상은 모두가 힘들다며 아우성이었다. 특히 장이라도 보는 날이면 더 힘들었다. 택배도 문전 배달이 안되다 보니 최소한으로 하고 작은 크기의 물건들만 주문을 했다. 물건은 1층 우편함 앞. 한 달이상 걷는 수고를 하고 나니 번듯한 승강기가 탄생했다. 20년 넘게 보아온 스테인레스에서 중후한 골드빛 승강기는 보기만 해도 고급졌다. 특히 음성인식기능이 있어 1층 로비에서 "몇 층 가세요?"라는 물음에 "00층" 답변만 하면 승강기가 데려다 준다. 특히 양 손에 짐이 있을 때 요긴하다. 주변 아파트에는 없는 우리 아파트만의 기능이라서 최첨단이라며 모두 부러워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 음성인식에 오류가 잦다며 다들 무용지물이라고들 투덜댄다. 나도 열심히 12층이라고 말하지만 탑승 후 확인하면 어느땐 10층, 11층, 15층, 심지어 2층에 불이 들어오기도 한다. 몇 번 코드가 맞지 않아 나름 연구를 해서 이제는 잘 맞는 편이다. 어느날 여러 분들이 함께 승강기를 탔다. 다들 한마디씩 한다. "얘는 말 귀를 참 못 알아 들어" "이 승강기 진짜 엉터리야" "새 건 데 왜 이런지 모르겠어" "바보 같아" 등등 그동안의 에피소드들을 웃으며 털어놨다. 7층을 말하면 10층을, 6층을 말하면 9층, 15층을 말하면 5층이나 12층으로 알아듣는다며 모두 한마디씩 했다.
처음에는 나도 또박또박 말했는데 외려 오류가 생겼다. "십-이층" 텀을 두고 말해도 오류가 생겼다. 발음은 자연스럽되, 띄어말하기도 너무 텀을 두지 않고 적당히 해야 비로소 12층을 인식한다. 기계오류일까, 발음 문제일까. 내 생각은 기계에 맞는 톤과 성량, 발음의 정확도 등이 미치지 못해 제대로 인식이 안되는 것 같다. 모르긴 해도 기계는 최적의 발음과 성량, 톤의 상태로 입력이 돼 그 프로그램대로 음성을 인식할 것이다. 아마도 기계 탓이 아닐 게다. 계속사용하다 보면 다른 분들도 요령이 생기겠지. AI수준은 아니지만 어쨌든 요즘 기계의 영묘함을 사람이 따라가기가 쉽잖은 세상이다. 기계 탓하기 전에 나의 발음에 좀 더 신중을 기해 보는 건 어떨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