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우리 집은 큰 마당과 사립문이 있었다. 오징어 놀이, 사방치기, 자치기, 팽이치기 등 친구들의 놀이터다. 해가 서산에 뉘엿뉘엿 질 무렵에야 한두 명씩 집으로 돌아갔다. 온종일 시끄럽게 뛰노는 아이들에게 언제나 안전하게만 놀라고 당부하셨다.
한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홀로 되신 어머니였지만 마음만은 부자였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동네 아주머니, 아저씨들도 자주 담소를 나누었는데 병수 형 어머니도 계셨다. 몸이 아파 병원에 계시는 날이 많았기에 병수 형은 우리 집에서 먹고 자면서 농사일을 거들어 주었다. 7남매 대식구인데도 늘 친형제처럼 지냈다.
어느 추운 겨울, 첫눈이 동네를 하얗게 수놓았다.
"원성아(당시 집에서 불렀던 내 이름)"
사립문 쪽에서 병수형 어머니의 힘없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침을 드시다 말고 어머니는 부리나케 마당으로 뛰어나가셨다. 그해 겨울, 총각김치에 보리밥이 전부였지만 따뜻한 정을 나누며 한겨울을 함께 했고 병수 형 어머니도 점점 병세가 회복되었다.
가난했지만 인정만큼은 넉넉해서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첫눈이 올 때면 까마득한 세월을 자식만을 위해 살아온 엄마와 지병으로 고생하면서도 병수 형님을 사랑과 정성으로 잘 키우셨던 병수형 어머니가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