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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걷이의 추억
작성자
조*표
등록일
2024.09.11
조회수
390

  온 가족이 볏단을 태산만큼 쌓아놓아야 일이 끝났다. 집에 돌아오면 가을걷이로 수확해 놓은 콩과 팥이며 고추 등을 말리느라 우리 집 앞마당은 발 디딜 틈도 없이 가을걷이로 거두어들인 농작물로 꽉 들어차 있다. 씨받이로 처마 밑에 매달아 놓은 옥수수를 쳐다보면 마음도 풍성해져서 괜히 기분까지 좋다.

 

  호박, 가지, 토란대 등의 나물은 가을볕에 말려야 색과 맛이 오래 보존된다며 어머니는 햇볕만 있으면 마당 한가운데에 내놓곤 하셨다. 들에서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오면 누가 먼저라고도 할 것 없이 형제들끼리 등목을 해주는데 흠뻑 땀을 흘린 후 찬물을 등에 끼얹고 난 후 수건으로 닦으면 독특한 시원함과 개운함이 있다.

 

  감나무에 주렁주렁 빨갛게 익은 감을 따서 항아리에 물을 넣고 우려내면 이튿날 떫은 감도 달고 맛있는 감으로 변신한다. 그래도 겨울에 까치가 먹으라고 몇 개는 안 따고 남겨둔다.

 

 온 가족이 희미한 등불 하나를 켜놓고 마주 앉아서 함께 먹는 저녁은 꿀맛이다. 엄마가 고추를 송송 썰어놓고 호박 몇 개를 통째로 넣고 손수 끓여주신 된장찌개 맛은 꿀 맛 그자체다. 우리 집은 동네 어르신들의 놀이터였다. 어쩌다가 얼큰하게 막걸리 한 잔을 드시고 흘러간 노래를 부르면 곧바로 마을 노래자랑으로 이어진다. 노래와 술로 농사일의 시름을 달래고 다음 날에는 새벽같이 일어나서 논밭으로 나가셨다. 첩첩산중 산골에서 재배할 수 있는 농작물은 고추와 벼농사가 전부였다.

 

지금 가을걷이로 한창 일 고향의 풍경을 그려보면서 그동안 형님께 진 빚을 조금이라도 갚아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