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생각. 나를 살펴보기로 한 날부터 날 떠나지 않은 것.
난 내가 이렇게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인지, 그리고 생각을 즐겨 하는 사람인지 몰랐다. 아니, 실은 즐기는 걸 넘어섰다.
어쩌면 내 삶은, 생각에 이어가는 생(生)인지도.
나를 제대로 안 지 얼마나 되었을까. 실은 끝 날까지 완벽히 아는 건 불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걸 안 건 요 몇 년이다.
친한 지인이 보내주신 MBTI 검사로 인해 내 성향이 변한 걸 알 수 있었다.
아주 오래전에 검사를 했을 땐 ENTP가 나왔었다.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인께서 보내주셔서 다시 검사를 했을 땐, INTP. 내 성향이 E에서 I로 변해 있었다.
INTP.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그렇게 생각이 많은 데에는 역시 이유가 있었다. 내가 그런 사람이라서……. 하나하나 살펴보니 참 맞았다. 재미있었다.
성인이 되기 전, 지금만큼의 반이라도 내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졌다면……. 더 많은 세월을 나 자신으로 숨 쉴 수 있었을 텐데.
사실, 이 검사 이전에 나에 대해서 알 기회가 먼저 한 번 있었다. 그보다 몇 년 전, 한 곳으로 면접을 보러 갔었을 때.
원장님이 면접 끝에 제안을 하나 하셨다.
“선생님, 원하시면 심리테스트 받아보실래요?”
“네?”
“간단한 거예요.”
그런 것에 크게 관심이 없었을 때였다. 그러니까, 나 자신에 대해 말이다.
테스트 지를 들고 대답을 기다리고 계신 원장님 앞에서 난 원장님 눈치를 보고 있었다. 테스트를 받아보고 싶지도 않았지만 거절할 수도 없었다.
“네.”
밝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 대답이 원장님의 기분을 상하게 해드리려고 함이 아닌 나 자신을 알아가고자 함이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리고 막상 테스트를 받고 결과를 들으니 좋았다. 재미있었다.
결과가 나왔다.
결과 속 나는 내가 알던 나와 달랐다.
전까지 난 나를 사람들과 어울려서 수다를 떠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결과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사람들과 떠드는 걸 즐기기보단 친구와 영화를 보거나 미술관에서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걸 더 좋아하는 사람.
지나온 삶을 돌아봤다.
여러 명과 어울려 즐겁게 웃으며 수다를 떨고 집에 와도 꽉 찬 건 공허함뿐이었던 순간순간이 지나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 만남 속에서도 사람을 그리워했던 내가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나도 있었다. 그와는 반대로 마음을 터놓는 친구들과의 1 대 1 만남 속에서 만족감을 느끼던 내가.
여러 사람들 속에서도 외로워 조각조각 부서지던 나, 날 안아주는 한 친구 앞에서 안전해 온전히 하나이던 나. 그간의 내가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난 원장님께 감사드린다고 말씀드렸다.
그 이후로 더 날 알 수 있었다. 내가 무엇에 불편을 느끼는지, 무엇에 편안함을 느끼는지, 만족감, 안전함, 온전함. 평화를 느끼는지 조금씩 알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이에는 필요했다. 생각.
난 여러 생각을 한다. 상상도. 하지만 결코 쓸데없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신기한 일이다. 상상한 대로 정말 이뤄지니 말이다.
몇 년 전, 국가기록원에서 공모전을 열었었다.
처음 접한 공모전이어서 잠시 망설였지만 공모전 주제가 내가 평소에 생각한 것이어서 결국 글을 내게 되었다.
내가 선택했었던 부문은 시(詩). 그전까지 문예지에 내왔던 시들 모두 떨어졌었지만 시를 난 포기할 수 없었다.
수상자들이 적은 편이 아니어서 맘 한 편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오르지 않을까, 내 작품? 마지막 줄에라도.’
그리고 내가 낸 시의 앞부분을 보면서 처음으로 내 시에 대해서 난 좋은 평가를 내렸다.
‘표현을 잘한 것 같아……. 어쩌면 되지 않을까?’
그리고 시간은 흐르고 흘렀다.
그렇게 흘러 그날이 왔다. 잊고 있었던, 발표일.
문자 한 통이 왔다. 안전 안내 문자인 줄 알고 확인을 한 순간 내 시선에 들어오던 글자들.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여러 번 읽었다.
읽어도 읽어도 좋았다.
급기야 그 글자들이 꼭 별 같았다. 휴대폰 화면이라는 밤하늘에 뜬 별. 반짝이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기쁜 건 몇 초였고 난 금세 그전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시로 처음 받게 된 상, 그 소식 앞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많이 흥얼거려 왔었던 풍경이었기에.
이렇게 상상을 하면 이뤄진다는 걸 경험한 뒤로 난 더욱 상상을 했다.
내 꿈이 이뤄진 날들. 그 순간을.
그리고 그 순간 불어올 향기로운 바람, 그 찰나의 촉감까지도.
수상의 기쁨을 맛본 뒤에 난 더욱 공모전을 찾았고 내 발걸음은 한 잡지사의 누리집에서 잠시 멈췄다. 이름만 들어도 아는 잡지사였다. 게다가 평소에 좋은 느낌을 갖고 있던 잡지사. 그곳에서는 상시로 원고를 받고 있었다. 안 낼 이유가 없었다.
어떤 주제로 응모할 것인지 살핀 후에 시를 택했다. 그러다가 나 자신에게서 질문을 받았다.
‘왜 시만 고집해? 네 얘기 보내 봐. 이번엔 시 말고 수필. 네 얘기를 들려줘.’
내 안의 내가 날 잡아끌었다.
난 조카와의 일화를 적은 수필을 냈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될 거란 상상을 했다. 하지만 상상이지, 망상이 아니었다. 확신. 반드시 채택 전화가 올 거라는.
시간은 흐르고 흘렀다. 매일 잡지사 누리집에 들어가 확인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결과가 나오질 않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장되지 않은 번호로 전화가 왔다. 하지만 난 알았다. 저장은 하지 않았지만 내가 중간까지 기억했던 잡지사 번호와 아주 비슷한 번호였기 때문에.
“보내주신 글이 채택이 되어서 실리게 되었습니다.”
수없이 채색했던 순간 속, 실제로 내가 있었던 그때. 예상을 넘어 확신을 했기에 덤덤할 줄 알았지만 황홀했었다.
확실히 알았다.
내실을 갖추고 상상을 하면 정말 이뤄진다는 것을.
생각이 날 낳았고 상상이 날 키웠다. 난 이런 사람이다. 생각하는 사람. 앞으로도 이 즐거운 숨 계속 쉬고 싶다.
나를 알아가,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