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병원 신세 지는 일이 드문 나. 한 달 정도 매일 자전거를 1시간 이상씩 탔다. 어느날부터 소변이 자주 마렵고 잔뇨감도있어 병원에 갔다. 아무래도 자전거를 타서 방광에 이상이 생겼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먼저 동네 의원에서 받은 소견서를 들고 G대학병원을 갔다. 비뇨기과에서 진료 상담을 하고 이것저것 촬영을 했다. 결과를 보기 위해 다시 병원에 가니 비뇨기 쪽에 크게 이상은 없으나 약간 염증이 있다며 일주일분의 약을 처방해주었다. 다만 소장과 대장 사이에 뭔가 있는 것 같으니 해당 진료과에서 자세한 진료상담을 받아보라고 했다.
곧바로 진료과를 찾아가니 "뭔가 보이는 것이 있는데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입원해 개복 수술을 한 후 조직검사를 해야 알 수 있다"고 했다. 복강경으로는 안되겠냐고 질문했더니 크기가 너무 작고 매우 애매한 위치라서 개복을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방법이 없다 싶어 의사의 지시대로 입원날짜를 잡고 돌아왔다.
가족들에게 상황을 설명하니 큰 아이가 바로 입원하지 말고 서울의 본 병원인 G병원을 가서 다시 한 번 진료를 받아 보기를 권했다. 엄마가 방문할 진료과는 아니지만 친구가 근무하고 있는 병원이니 진료진도 잘 알아보도록 하겠다고 했다. 나는 그 병원이 그 병원인데 뭐하러 번잡스럽게 일을 만드느냐며 그냥 입원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아들의 강력함에 밀려 입원을 취소했다. 부모가 나이 먹고 자식이 장성하면 가끔씩은 못이기는 척 말을 들어주는 것도 필요할 때가 있다.
병원에서 전원서를 발급받아 강남 G병원을 갔다. 초음파 사진을 가져갔지만 정밀 진단을 위해서 대장내시경이 필요하다고 했다. 며칠 후 진료결과는 의외였다. "현재로서는 크게 이상은 없는 것 같아 수술할 만한 사안은 아니다"라는 명쾌한 설명이었다. 다만 1년에 한 번씩 추적관찰해 보자고 했다. 비슷한 얘기가 아니라 거의 상반된 결과에 나는 잠시 헷갈렸다. 수술하지 않아도 된다는 결과에 안심은 되었지만 한 편 허탈하기도 했다. 서울과 부천이라는 거리의 차이가 결국 진료의 차이인가? 같은 병원에서 이렇게 다른 진료결과가 나오나 싶어 어느쪽을 믿어야 하나 싶었지만 서울 의료진이라는 편견보다는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심쪽의 결과를 믿기로 했다
부천의료진에게 진료를 받으면서도 영 찜찜했다. 젊은 남자 의사였는데 몸이 매우 뚱뚱했다. 진료를 하면서도 수시로 다리를 흔들었다. 여름이긴 했지만 양말을 신지 않은 채 크록스 신발을 신었다. 진료 받으면서 내내 뭐 이런 의사가 있나 싶어 신뢰감이 떨어졌다. 설상가상 지켜봐도 될 사안을 단호하게 개복하자 한 부분까지 생각하니 정말 아찔했다. 체질에 따라 뚱뚱하고 마를 수 있다. 더우니 양말 안 신을 수도 있다. 의사라고 맨발에 크록스 신지 말라는 법도 없다. 다만 의사를 향한 평소 나의 선입견이 있었을 뿐이다. 의사라면 최소한은 이러이러 해야 한다는...
위 나라 편작에 의하면 병의 증세가 나타나기 전에 치료하는 것이 최고의 의사이고 그 다음은 초기 증세를 치료하는 의사, 마지막으로 중병을 치료하는 의사라고 했다. 그러나 작금의 세상은 중병을 치료하는 의사를 최고로 꼽는다. 왜냐하면 침을 꽂고, 주사를 놓고 수술을 하는 등 법석을 떤 것이 세상에 알려지기 때문이다.
인간사가 대개 그렇듯 일의 과정에는 징후라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많은 경험을 통해 그 징후를 예견하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은 경험에서 배운다고 한다. 하지만 더 필요한 것은 경험하기 전에 일의 기미와 징후를 살펴 대비하는 즉 예방하는 능력을 갖추는 일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일에는 다가올 일의 징후가 내재되어 있다는 부분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편작이 말하는 명의의 조건은 단지 의술에만 해당하지는 않는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