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농약 친 거도 싫어 하자녀. 그래서 농약 안 줬더니 글쎄 열무 잎사구가 모기장 같은디 그래도 다듬어서 조금 담았다"
엄마가 직접 가꾼 열무로 김치를 담갔다면서 시골 간 동생이 배달해 줬다. 한여름, 열무김치는 국수에도, 냉면에도, 비빔밥에도, 물에 말아먹는 찬밥에도 최고의 찬이다. 열무김치통을 받아들고 고맙고 반가운 마음보다 굽은 허리에 수술한 다리가 성치 않은 몸으로 김치를 담그는 엄마에게 속상함이 먼저 올라왔다. 전화로 또 한소리 했다. 김치 담그는 것을 하시지 말라는 얘기로 시작해 통화하다 보면 속상해서 절로 언성이 높아진다. 나의 속내는 '몸 아끼시라'이지만 대화 속에 엄마 마음을 더 헤아리지 못한 것 같아 끊고 나면 늘 후회스럽다.
구순을 바라보는 엄마는 아직도 6남매 자식들 김치 걱정이다. 김장 김치통이 시큼해지고 서서히 비워지기 시작하면 엄마의 김치 담그기가 본격 시작된다. 오이김치에 열무김치, 가끔은 집 뒤 논두렁에서 뜯은 돌나물에 미나리를 곁들인 물김치까지. 제발 김치 담그는 것을 그만 두시라는 당부에도 아랑곳하지 않으신다.
"알았어, 안 담으깨" 하시면 끝이다.
이번에 담은 열무김치를 먹는데 공교롭게도 머리카락이 두 번 나왔다. 결국 나는 엄마의 김치 담그기를 중지 시킬 빌미를 찾았다 싶어 당장 전화를 걸어
"엄마, 김치에 머리카락이 여러 개 나왔으니 제발 그만 담아요!"
"수건을 쓰고 할 걸, 그냥 했더니 그랬능가 부다. 다음번에는 꼭 쓰고 하깨"
미안함 한웅큼 담긴 엄마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가슴으로 파고 들었다. 작전 실패다. 전화기를 내려놓으며 가슴이 쿵한다. 엄마 가슴에 대못 하나 더 박은 것 같다. 맞아! 말에도 온도가 있댔지. 나는 엄마에게 몇 도쯤 되는 말을 했을까? 따뜻한 사람 체온 만큼은 커녕 어쩜 늘 저 체온증인 것 같다.
다시 전화드려서 사실은 머리카락은 없었는데 엄마가 자꾸 김치 담가주시는 게 안스러워 그랬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아니, 그러면 안심하고 더 담으실 게 아닌가? 누군가는 엄마의 부음을 듣고 가장 먼저 한 일이 엄마가 담가 주신 김치를 소분해 냉동실에 넣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엄마가 담가 주시는 김치를 어떻게 사양하면 좋을까, 그냥, 엄마의 사랑이니 주실 때까지 받아 먹는 게 맞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근래 몇 년 사이 난제 중의 가장 큰 난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