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차 보리는 순둥순둥이다. 몸무게는8킬로그램이지만 자기보다 크거나 비슷한 크기의 친구는 슬슬 피하고 작은애에게만 접근한다. 그러나 작은 애들은 대부분 덩치 큰 우리 보리를 겁내는 경우가 많다. 건강하게, 순하게 잘 지내던 보리가 3년 전 구토 설사 등의 증세가 이어져 병원에 갔다. 몇 군데를 거쳐 입원을 결정하고 수술을 했다. 장기에 종양이 생겨 제거수술을 받았다. 1주일 입원해 있는 동안 매일 병문안을 갔다. 링거를 꽂고 목카라를 한 보리는 병실(작은 케이지 안)에서 나오고 싶어 낑낑댔다. 갈 때마다 손 한 번 잡아주지 못하고 안스러움에 울다가 오곤했다. 사람처럼 종양은 흔하게 생기는 것으로 주로 8세 이상의 노령견에 생길수 있다고 했다. 보리는 겨우 5살이 막 됐을 때 생겼으니 일찌감치도 찾아왔다.
이제는 별일 없이 건강하게 자라기만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또 사달이 났다. 또 다시 구토를 했다. 보리는 희한하게도 맨 바닥에 구토를 안한다. 주로 소파 나 침대다. 누런 물까지 토한 것을 보니 3년 전 악몽같았던 일이 다시 떠올랐다. 급히 병원에 갔다. 엑스레이 촬영결과 장내에 뭔가가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요맘 때 주로 복숭아, 자두 씨 등을 꿀꺽해 장이 막혀 이런 증상이 있다는 것이다. 자두, 복숭아를 먹기는 했으나 씨앗은 쓰레기통에 넣은 것으로 기억하는데...
당장 입원해 수술이 필요하다는 의견과 하루 이틀 정도 씨앗이 나오길 기다려 보자는 두 가지 안을 제시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위급해질 수 있다는 첨언도 있었다. 기왕 수술할 거 빨리 해야 할지, 하루만 기다려 봐야 할 지 결정을 못하고 있었다. 가족방에 의견을 올린 결과 하루만 기다려 보자는 쪽이었다. 운이 좋으면 변으로 배출되기도 한단다. 장운동을 촉진하는 약을 받아와 시간 맞춰 열심히 먹였다. 그리고 배 마사지도 열심히 했다. 비가 멎기를 기다려 늦은 저녁 산책을 나갔다. 혹시 나올 것을 대비해 나무 막대기도 준비했다. 응가를 했다. 열심히 헤집어 보았지만 허탕이다.
두 번째 응가다. 다시 휴대폰에 불을 켜고 열심히 뒤적였다. 뭔가가 있었다. 딱딱하다. 그런데 복숭아. 자두씨는 아닌 것 같다. 집으로 가져와 깨끗이 씻어 봐도 그저 까만색일 뿐 남편과 나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길이는 4-5센티 정도다. 따로 사는 두 아들들의 힘을 빌리고자 가족톡방에 올렸다.
"혹시 옥수수대 같다"는 얘기가 나왔다. 생각해 보니 며칠 전 옥수수를 먹었다. 보리는 우리 식구 식성을 꼭 닮아 감자, 고구마, 단호박, 옥수수, 오이 등을 무척 좋아한다. 그렇다고 식탐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옥수수 끝 부분을 통째로 잘라준 생각이 났다. 뜯어먹고 나서 뭐가 아쉬운지 대까지 꿀꺽해 버렸던 것이다. 수술,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수술비용도 비용이지만 다시 한 번 개복을 해야 한다는 것이 더 큰 안스러움이었다. 보리야, 제발 주는 것만 먹으면 안 되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