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끝나면서 양가 대소사도 이제 꼬박꼬박 챙겨야 하는 일상이 되었다. 코로나로 인한 불편함도 있었지만 며느리 입장에서는 솔직히 나름 편한 점도 있었다. 명절, 제사에서 살짝 비켜갈 수 있는 편안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35년간 명절, 제사, 생신에 빠짐없이 내려가던 시댁을 코로나가 떡하니 길목을 막아주었다.
명절 연휴 첫날이면 어김없이 보여주는 인천공항의 인파는 항상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아니 내 평생 있을수 없는 일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코로나 덕분에 작년에는 '명절여행'도 다녀왔다. 끝없이 이어져 막히고 밀리는 귀향 대열에 서지 않고 공항에서 느긋하게 식사하고 카페에서 차를 마시는 시간이 꿈만 같았다. 절대자께서 나에게만 부여한 듯 특별한 순간으로 착각을 했다. 차례음식준비에 끼니마다 20명이 넘는 밥상차리기를 벗어나 비행기를 타고 이국을 향하는 마음은 진짜 경험자만 안다.
시부님의 제사는 항상 삼복 중에 찾아온다. 올해는 조금 일러서 초복 전이지만 장마로 인한 높은 습도와 더위는 늘 감수해야 한다. 그런데 이번 제사일과 고모댁 아들 결혼식이 겹쳤다. 고모와 나는 12살 차이다. 소위 말하는 띠 동갑. 막내딸인 고모는 나를 동생처럼, 맏이인 나는 고모를 언니처럼 생각하며 알콩달콩 지낸다. 서로의 고민을 흉금없이 터놓기도 한다. 초등학교 때는 항상 고모가 설빔, 추석빔을 사 주셔서 동네아이들에게 최고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이런저런 까닭에 고모는 내게 참 특별하다.
한 달 전 모바일 청첩장을 받고 아버님 기일과 겹쳐 곤란해 하는 나와 달리 남편은 아무 문제 없다는 듯
"제사라서 못 가니 미리 댕겨오면 되겠네"
딱 한마디로 끝냈다.
'이럴 수가...'
"제사는 내년에도 갈 수 있지만 결혼식은 다음이 없으니 가고 싶다고"고 했지만 미리 가나, 식장 가나 별 차이가 없다는 어이없는 답변을 듣고 식장가는 것을 포기했다. 길게 얘기해봤자 집안의 평화만 깨질 게 뻔하니!
제삿날 음식을 준비하면서 수시로 시간을 들여다 봤다. 나름, 예식장의 이미지를 그리면서... 그 순간 엄마를 중심으로 우리 형제들 내외와 조카들이 우르르 모여 세상 행복한 모습으로 찍은 사진이 형제방에 올라왔다. 나만 없다. 다시 속상함이 올라왔다.
일몰 후 제사를 지내야 한다는 원칙에 설거지까지 정리하고 올라오니 자정이 넘었다. 제사에 다녀오고 나니 그래도 마음은 편했다. 코로나 때 빼고 평생을 다니던 제사인데 빠지는 게 외려 이상하지. 마음 불편한 건 딱 질색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망자의 행사보다 산 자의 행사가 더 중한 것 아닌가? 망자의 행사, 산 자의 행사는 모두 끝났지만 내 마음을 읽어주지 못하는 남편 때문에 아쉽고 속상한 마음은 내 마음 저변에 며칠 묵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