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잡기, 실리와 도리 사이에서.
한순간 만의 일은 아니다. 이건 내가 계속 해오는 일.
이모라는 이름이 붙은 이후로는 늘 따르는 순간의 선택.
실리냐, 도리냐.
“또 와? 진짜 자주 온다. 네 조카들.”
친구가 오늘도 이야기한다. 아! 우리 조카들 자주 오는 편이었구나.
좋다, 즐겁다. 그건 분명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조카들이 온다는 고급 정보를 접하면 약속을 잡아 나가게 되었다.
계속 그렇게 해오다 어느 날은 시간 분배에 실패!
조카들 오기 전에 자연스레 나간다는 것이…….
‘아! 신발이 오늘따라 왜 이리 안 신기는 거야…….’
그러다가……. 삐리릭! “이모!” 하는 조카를 신발장 앞에서 마주했었다.
촉박한 시간에 차마 다 들어갈 수 없었던 한쪽 발.
하여, 그 상태로 그렇게 허겁지겁 막 나가려던 찰나!
“아! 이제 우리가 귀찮으신 거군요?”
이렇게 말하며 나를 스쳐 지나간 조카.
순간 뎅!
귀를 쟁쟁히 울리는 소리!
자유를 노래하며 나가는 게 맞았지만, 막상 조카에게서 그 말을 들으니 내 안을 채운 건, 죄책감뿐.
하지만 이제 와 되돌릴 수도 없던 약속에…….
“아니야, 이모 약속 있어서 그래. 얼른 갔다 올게.” 하며 나갔지만…….
문 닫힌 뒤의 정적 속에서부터 약속 장소로 가는 과정과 만남의 모든 순간, 집으로 돌아오기까지의 시간 속에서 떠오르는 건 조카의 한마디뿐.
분명 친구와 만나 좋았고, 함께 본 영화, 재밌었고, 같이 먹은 음식, 맛있었다.
그늘 드리울 틈 없이 봄뿐이었는데…….
나이 들수록 나로 있는 시간이 좋아…….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가 무엇을 할 때 마음이 제일 나 같은지, 가장 편한지…….
그걸 너무나도 잘 아는 나이기에 이것이 맞다 생각한 후 행한 행동이었는데 다른 마음이 스멀 올라온다.
분명 실리를 따진다면 최고의 선택이었을 텐데.
자꾸 스멀, 조카의 한마디가 맘을 기어다니더니 결국엔 맘을 꼭꼭 채운다.
‘나를 아기 때부터 사랑해 주던 이모가 이제 나와 함께 하는 게 귀찮은 일이 되었나 봐.’ 하며 속이 상한 조카의 등이 내 맘을 채워가고 있었다.
한시라도 빨리 나가려고 발을 질질 끌며 엉거주춤한 자세로 있던 내가 떠올랐다.
‘왜 그랬을까?’
실리를 따져 괜찮다 여겼는데, 죄책감뿐이라면 진정한 실리일까?
친구와의 만남은 물론 그 전후의 시간을 근심이 채우고 있는데, 실리는 무슨……. 이건 실점, 또 실수.
그렇게 알게 됐다. 실리와 도리, 한 등을 타고 있다는 것을.
최근에 조카들이 왔다. 또다시 실리와 도리 사이에 섰던 나. 한 등을 타며 그 경계를 넘나드는 둘.
자고 간다 들었을 때…….
‘피곤하겠지?’
‘많은 내 시간, 내 거 아닌 듯 반납해야겠지?’
‘나로서 보내는 행복이라는 실리, 멀리 날아가겠지?’
떠오른 생각들.
나로서의 시간을 빼앗긴 실,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한 이 실리.
하지만 그 실리를 얼마라도 붙잡을 수 있는 것은, 충분한 낮잠.
그거면 또 보충될 테니.
다시는!
조카에게서 그런 말, 듣지 않을 테다!
하여, 내내 조카들 마음에 이모의 사랑을 하나하나 내려놨다.
마음, 편하다.
어쩌면 이게, 가장 큰 실리 아닐까? 생각하며.
조카들이 가고 침대에 누웠다.
잘해냈다, 이모의 역할.
자신을 다독였다.
어쩌면 매 순간이 균형잡기, 실리와 도리 사이.
이번엔……. 그 균형잡기, 잘 해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