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는 퍼주기 대장이다. 자식. 친인척은 물론이고 안면 있는 사람이라면 뭔가 나눠주고 싶어한다. 그래서 우리 엄마 싫다는 사람은 없다. 시골 사람들 인심이 후하긴 하지만 우리 엄마는 좀 심한 편이다. 행길 옆의 우리집은 누가 지나가는지 대충 알 수는 있지만 엄마 눈에는 더 잘 띄는 것 같다.
"옆집 00엄마는 자식 말고는 시누이 시동생들한테도 콩 한 되 주는 법이 없다"며 가끔 뒷담도 하신다. 도회지에서 온 남의 집 자식들에게도 뭔가를 주기 일쑤다. 그 집에서 심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그 집 채소, 곡식 농사가 흉년인지, 풍년인지 눈여겨 보셨다가 필요하다 싶은 걸 갖다 주신다. 물론 많은 양은 아니다. 그러면 그 집 자식들은 다음 번에 올 때 두유나 마실 거리 등을 사다 드리곤 한다. 그러나 엄마는 받은 게 부담스러워 또다시 뭔가를 주시는 선순환... 이게 사는 맛이라면 맛일 게다. 보기도 좋고 듣기도 좋은 일이다.
문제는 허리가 90도로 꼬부라진 엄마가 누군가에게 나누기 위해 일하시는 것 같아 속상하다. 엄마는 나누는 기쁨을 뼈 속까지 느끼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속상한 우리는 "이제 제발 일 좀 그만 하시라, 그만 좀 퍼 주시라"고 얘기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목소리가 커진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한다. 별거 아닌 거 줬는데도 올 때마다 인사를 해오니 고마워 그냥 말 수가 없다"는 엄마와 "몸 좀 생각하시라"는 자식 간의 팽팽한 대결로 언성이 높아지기 일쑤다.
지난 주 엄마께 갔더니 근심어린 표정으로 "윗집 00이 글쎄 10만 원을 주고 갔으니 뭘로 갚아야 하나 걱정이네"하신다. 나는 대뜸 "엄마가 어지간히 뭔가를 주셨나 보네요" 했더니 "그전에 아버지 계실 때 감자 캐는데 지나가면 한 박스씩 줬고 봄에는 완두콩 좀 따주고 고구마순 좋아한대서 좀 따준 적 있었지." 아마도 엄마가 주신 것은 이보다 훨씬 여러 가지로 더 많을 수도 있다.
엄마에게는 큰 10만 원이 그 분에게는 오랫동안 십만 원 이상의 가치와 고마움으로 남아 있어 어쩌면 빚 갚는 심정으로 드렸을지도 모른다. 전에는 살기가 힘들다 했는데 들리는 말로는 요새 남편이 돈을 잘 번다는 소식도 이미 알고 계셨다.
엄마가 심어놓은 작물은 절대 저절로 자라지 않는다. 엄마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 엄마의 발자국이 잦을 수록 밭의 아이들은 더 잘 자란다. 지금은 엄마 혼자라서 많은 곡식을 심지는 않지만 골고루 심으신다. 부지런한 엄마 덕에 봄에는 완두콩, 본격 여름이 시작되면 강낭콩, 늦여름 무렵이면 풋콩이 밥그릇 속에 함께 한다. 그리고 가을부터 먹기 시작하는 서리태는 완두콩이 나올 때까지 이어진다.
시골은 지금 한 집에 많아야 노인 두 분, 아니면 할머니 혼자인 1인 가구가 마을의 99퍼센트를 차지한다. 엄마 역시 혼자 사신다. 그런 엄마를 뵈러 형제들이 가면서 이런 저런 간식거리를 사 간다. 그러나 엄마가 잡숫는 것은 실상 얼마 안된다. 엄마를 위해 준비해간 간식을 펴는 순간, 누구에게 줄까 독백처럼 떠올리신다. '마늘 한 접 가져온 집, 고구마 한 다라 가져온 집, 참깨 한 되 가져온 집, 자식이 끓여온 삼계탕을 나눠 먹기 위해 가져왔던 집....' 이웃들이 엄마한테 뭔가를 늘 가져오는 풍경은 아주 익숙하다. 그런 익숙함이 누군가의 집에 다시 익숙함으로 돌고 돈다. 돈으로 되돌려 주기에는 애매한 상황의 고마운 이웃분들에게 나눔을 위해 재배분 하시는 거다. "엄마 좋아하는 과자라서 두고 잡수시라고 여유있게 샀다"고 하면 "나 먹는 것보다 남 주는 게 더 좋다"는 엄마는 열심히 봉지에 담은 것을 전동차에 싣고 몇몇 집을 향해 출발하신다. 전동차 운전도 어찌나 잘하시는지 부릉~하면 벌써 뒷모습이 아득하다.
언젠가 책을 읽다가 밑줄 그은 부분이 생각난다.
'덕을 베풀면 외로울 일이 없다'고 했다. 받은 것을 늘 부담스러워 하시고 주는 즐거움에 사시는 구순의 엄마. 그래서 엄마는 혼자 사셔도 결코 외롭지 않은 것 같다. 뭔가를 줄 때마다 엔돌핀이 퐁퐁 샘솟으시나 보다. 아직은 손수 조석을 해 잡수시고, 심고 싶은 곡식을 심어 수확한 것을 주고 싶은 사람들에게 나누시며 주는 기쁨 누리는 엄마. '퍼주기 대장 엄마' 대신, '덕쟁이 엄마'라고 불러드리고 싶다.